[맛있는 기행] 제주 허름한 밥집에서 느끼는 엄마 손맛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1-04-30 18:42:17
  • -
  • +
  • 인쇄
제주도에 나름 전국구 맛 집이 있다. 서귀포에 자리 잡고 있다. 서귀포항 부근이다. 엄밀히 말하면 서귀포항과 조금은 거리가 있다. 서귀포항에서 호텔촌으로 조금만 오르면 된다.

허름한 밥집이다. 술은 안 판다. 주인의 철학이 뚜렷하다. 술을 마시려면 사갖고 가야한다. 2002년에 김영자(77) 할머니 부부가 문을 열었다. 20년 동안 한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도 김영자 할머니가 주방을 굳게 지키고 있다. 동업자는 바뀌었다. 남편 대신 아들 강정열(53) 씨가 어머니를 돕고 있다.

강정열 씨는 몸이 안 좋아 퇴직을 했다. 소일 삼아 어머니 일을 거들고 있다. 모자지간에 사이가 좋다. 엄마는 주방. 아들은 홀을 담당한다. 투박한 제주 사투리로 대화한다. 타지 사람은 이해가 안 되는 말도 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 아들은 손님에게 자랑한다. "우리 식당이 나름 전국구 맛 집이라고." 남들이 믿든 말든 상관이 없단다.

정말로 그럴까. 질문을 던졌다. 아들이 씩 웃는다. 그냥 드셔보란다. 제일 자신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1초의 쉼표도 없이 김치찌개란다. 순두부찌개도 별미라고 한다. 값도 싸다. 모든 찌개가 7000원이다. 두 음식을 모두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밑반찬이 놓인다. 10가지 반찬이 한상에 쫙 깔린다.

▲7000원 찌개를 시켰더니 10여 반찬이 한상에 쫙 깔린다.


입이 딱 벌어진다. 채소와 해초로 꾸며진 건강식이다. 본음식이 나오기 전에 젓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반찬이 담백하다. 조미료를 거의 안 쓴다. 재료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해서다. 김영자 씨는 매일 아침 7시에 시장을 봐온다.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김치찌개와 순두부가 나왔다. 김치찌개를 한 숟갈 먹어봤다. 먹는 순간 혀가 놀랐다. 이럴 수가. 김치찌개가 이런 맛이라니. 칼칼하면서 시원함이 느껴졌다. 해장에도 최고였다. 아들의 자랑이 입으로 느껴졌다. 묵은 김치와 제주 돼지고기가 환상의 조화를 이뤘다. 푸짐한 돼지고기가 포만감을 선사했다. 필자만 그리 느낀 게 아니다. 일행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세웠다. 김치찌개의 진수를 맛보았다.

순두부찌개는 어떤 맛일까. 우선 모양부터 다르다. 우리가 평소 먹는 순두부가 아니다. 두부가 거칠다. 콩을 갈아 만들었다. 일반 식당에서는 보기 힘든 순두부다. 순두부의 양이 엄청나다. 밥을 안 먹어도 될 양이다. 순두부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맛 또한 별미다. 매콤함이 오감을 자극한다. 엄마의 손맛 식당이 대표쌍두마차로 내세울 만하다.

▲콩을 직접 갈아서 만든 '순두부찌개'


다른 음식도 많다. 갈치 고등어 등 생선구이가 손님의 입맛을 돋궈준다. 철따라 한치물회 자리물회도 제공된다. 오겹살구이도 고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제주의 특산물을 제대로 맛보게 한다.

엄마의 손맛은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현지인들의 숨은 맛 집이다. 그나마 전국의 축구관계자에게는 일부 알려져 있다. 제주에 훈련 온 축구관계자들이 자주 찾는다. 제주 축구인의 소개로 별미를 맛보고 간다. 한 번 먹고 나면 계속 먹으러 간다. 왜 그럴까. 맛만 좋아서가 아니다. 주인의 고객 사랑이 대단하다. 손님을 가족처럼 맞이한다. 아침에는 달걀프라이를 제공한다.

▲아침손님에게만 제공하는 달걀프라이

점심에는 바빠서 내놓지 못한다. 제 시간에 밥을 먹으려면 예약이 필수다. 식탁이 4개 밖에 안된다. 바쁠 때는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별미를 맛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주인할머니는 잔정이 많다. 객지에서 온 손님에게 정성을 더 쏟는다. 상황에 따라 고등어구이도 무료로 내어준다. 7000원짜리 찌개를 먹는데 1만원짜리 고등어구이를 공짜로 주다니. 말이 안 되는 식당이다.

주인할머니의 푸근한 인심에 유명인도 발길이 잦다. 톱스타 송강호 이병헌도 엄마의 맛 집 음식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명인이 찾았다 해서 맛 집은 아니다. 평범한 손님이 인정해 줘야 맛 집이다. 엄마의 손맛은 보통사람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다. 맛이 좋아 발길이 끌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유명인도 찾게 되는 것이다.

엄마의 손맛 식당은 특징이 있다. 카드가 안된다. 세금을 안 내기 위함이 아니다. 주인이 카드결제를 할 줄 몰라서 설치를 안했다. 주인이 휴대폰도 안쓴다. 예약은 유선전화로 해야만 한다. 그냥 옛 생활이 편하다는 주인의 고집이다. 약간의 불편함이 오히려 편할 때가 있다.

엄마의 손맛은 그런 불편함을 제공해주고 있다. 여행의 고단함을 풀고 싶은가. 집밥이 그리워지는가. 물어물어 찾아가라. 엄마의 손맛으로.




 글/ 김병윤 작가
   춘천MBC 아나운서
   주간야구 기자
   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 기자
   SBS 스포츠국 기자
   저서 <늬들이 서울을 알아>
          <늬들이 군산을 알아>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수자원공사, 재난구호용 식수페트병 '100% 재생원료'로 전환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재난구호용으로 지급하는 식수페트병을 100% 재생원료로 만든 소재를 사용한다고 23일 밝혔다. 수자원공사가 제공하는 이 생

친환경 사면 포인트 적립...현대이지웰 '그린카드' 온라인으로 확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의 토탈복지솔루션기업 현대이지웰이 녹색소비생활을 촉진하기 위해 친환경 구매시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그린카드 적립서비스

SK AX, ASEIC과 51개국 제조업 탄소중립 전환 나서

SK AX가 'ASEIC'과 손잡고 국내외 51개국 중소·중견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공급망 탄소관리, 기후공시 등 탄소중립 전환을 돕는다. SK AX은 ASEIC(아셈중

쿠팡 '비닐봉투' 사라지나?...지퍼 달린 다회용 '배송백' 도입

쿠팡이 신선식품 다회용 배송용기인 프레시백에 이어, 일반 제품 배송에서도 다회용 '에코백'을 도입한다.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인천, 부산, 제

삼성, 수해 복구에 30억 '쾌척'…기업들 구호손길 잇달아

삼성그룹은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30억원을 21일 기부했다. 기부에는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

삼성전자-LG전자, 침수지역 가전제품 무상점검 서비스

삼성전자서비스와 LG전자가 집중호우 피해지역을 대상으로 침수된 가전제품 세척과 무상점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18일부

기후/환경

+

100년 넘은 시설인데 관리예산 '삭둑'...美 오하이오주 댐 '붕괴 위험'

트럼프 정부가 댐 관리인력과 예산을 줄이면서 100년이 넘은 미국 오하이오주 댐들이 붕괴 위험에 처했다. 앞으로 30년동안 1만8000개 주택이 홍수 피해

가자지구 폭격 잔해 처리에서만 온실가스 9만톤 배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남겨진 가자지구의 잔해를 처리하는데 9만톤 이상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영국 옥스포드와 에든버러

이란, 50℃ 넘는 폭염에 가뭄까지…물 아끼려고 임시공휴일 지정

이란 당국이 50℃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과 물 부족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물소비 제한령을 내렸다. 일부 지역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임시공휴일

두산에너빌리티, 국내 최초 10MW 해상풍력 국제인증 획득

두산에너빌리티는 자사가 개발한 10메가와트(MW) 해상풍력발전기가 국제인증기관 UL(Underwriters Laboratories)로부터 형식인증을 취득했다고 23일 밝혔다. 국

햇빛 이용해 탄소배출 없는 '그린 암모니아' 생산기술 개발

국내 연구진이 태양광 시스템을 활용해 폐수 속 오염물질을 고부가가치 에너지원인 암모니아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다.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

기후변화로 美 북동부 폭풍 '노이스터' 위력 17% 증가

지구온난화로 미국 북동부 지역의 폭풍 위력이 증가하고 있다.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기후학자 마이클 만 박사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1940년 이후 올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