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풍향계] ESG경영 '리더십'이 핵심이다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5-02-17 08:20:02
  • -
  • +
  • 인쇄

한 제조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ESG 실무담당 임원이 회사의 ESG 경영수준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과 예산계획을 CEO에게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CEO는 ESG 등급을 올리는데 집중하라며 다른 일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있을 수 있는 일 같지만 사실 이 CEO의 지시는 ESG 경영에서 힘을 빼는 것과 다름없었다. ESG로 회사의 체질을 본질적으로 바꾸기보다는 그저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중시하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ESG는 이제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영 트렌드가 됐다. 그런데 우리는 ESG 경영의 핵심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ESG는 한 마디로 환경보호, 이해관계자 존중, 윤리적인 투명경영 등의 가치를 경영 전반에 착근하라는 요구다. 그런 만큼 경영의 '잔재주'보다는 ESG를 통해 경영 혁신을 이뤄냄으로써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ESG 경영을 모범적으로 실현해낸 기업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먼저 덴마크 에너지기업인 오스테드. 이 기업은 사업모델 자체를 친환경 비즈니스로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킨 대변화를 이뤄냈다. 당초 오스테드는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85%에 달했다. 하지만 2008년에 이 회사 경영진은 기후변화 등의 추세에 비춰볼 때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기존 사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결심했다. 30년에 걸쳐 사업구조를 화석연료 발전 비중 85%에서 연안 풍력발전 85%로 탈바꿈시키자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잘 나가던 사업을 사실상 접고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새 사업에 뛰어드는 승부수였다.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반발했고 외부의 시선도 회의적이었다. 2012년에는 천연가스 가격 폭락으로 적자를 기록하면서 경영 위기에 빠져들었다. 또 연안풍력 발전 단가가 상업성을 담보할 정도의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아 풍력발전 기업으로의 변신이 가능할지 불투명해졌다.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간 것은 경영진의 흔들리지 않은 소신이었다. 가는 길이 옳다고 확신하고 석탄발전소 폐쇄 등 조치를 계속해나가면서 풍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중단없이 늘려나갔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스테드는 계획을 20년 앞당겨 불과 10년만에 원래 세웠던 목표를 달성했다. 연안 풍력발전 세계 1위 기업으로 부상했다. 오스테드는 이같은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이뤄낸 힘은 경영진의 리더십이이었다고 회고한다. "중요한 사실은 기술적 또는 재무적 도전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리더십 이슈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리더십을 중시했다."

핀란드 에너지 기업인 네스테도 오스테드와 비슷한 변화를 일궈내 주목을 받고 있다. 1948년 국영정유기업으로 설립된 네스테는 60년 동안 줄곧 원유사업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에서 탄소배출 규제법안이 입법화되는 등 사업환경이 크게 달라지자 원유만으론 미래가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활로는 탄소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재생에너지였다. 당시 CEO 매티 리보넨은 '담대한 혁신'을 위한 7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풍에 직면했다. 직원과 소비자, 투자자들이 반대하고 한 미디어는 "무리한 일을 벌이는 CEO를 해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리보넨은 요지부동했다. 과감한 의사결정과 필요한 투자를 지속해나갔다. 마침내 네스테는 바이오디젤 등 재생연료의 세계 최대기업으로 새로운 깃발을 올렸다. 네스테의 성공 또한 경영진의 우직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ESG는 단기에 수익을 쥐어짜기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가는 경영을 추구한다. 영국의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는 이런 점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은 CEO 폴 폴먼. 그는 2009년에 시장을 놀라게 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단기 경영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기 실적 발표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을 계기로 일부 투자자들이 주식 매각에 나서면서 주가가 떨어지는 등 다소의 혼란이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장기 경영을 중시하는 건전한 주주들이 들어오면서 주가가 안정됐다. 폴먼은 이와 관련해 "기업은 인기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먼은 더 나아가 아예 10년짜리 장기 경영계획을 추진했다. 이른바 '유니레버 지속가능 생활 플랜(USLP)'으로 10억명 이상의 건강 및 위생 개선, 환경에 대한 영향 절반 감축, 수백만 명의 삶 향상을 목표로 삼았다. USLP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그 결과 유니레버의 재무적 성과도 크게 개선됐다. 폴먼이 재임한 10년동안 유니레버 주가는 150%나 올랐다. 유니레버는 최근 CEO가 바뀌면서 ESG 경영이 일부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긴 하다. 하지만 한 번 뿌리내린 ESG 경영의 체질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소개한 세 개 기업의 사례는 ESG 경영이 혁신의 과정이며 경영진의 리더십이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인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보인 ESG 리더십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단기 이익보다는 회사의 중장기적 성장을 추구하는 비전이 변화의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둘째 이들 기업은 환경 등 외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ESG와 재무적 성공을 조화시키는 데 역점을 뒀다. 셋째, 이해관계자와 활발하게 소통함으로써 변혁의 방향성에 대해 단단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니레버의 CEO였던 폴 폴먼은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했다. "기업은 세상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인가?" "기업이 있어서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인가?" ESG 경영을 내건 기업의 리더들이 더 나은 세상과 기업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기 위해 스스로 던져볼 질문들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최남수서정대 교수 nschoi@seojeong.ac.kr  다른기사보기
  • 현 서정대 교수/더이에스지연구원장/전 YTN 대표/ 전 MTN 대표

핫이슈

+

Video

+

ESG

+

쿠쿠 또 디자인 침해?...코웨이 "끝까지 간다" 강경대응 입장

최근 출시된 쿠쿠의 '미니100 초소형 정수기'가 코웨이의 대표제품 '아이콘 정수기'와 또 디자인이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두 회사간의 디자인

그린패키지솔루션, LVMH GAIA와 친환경 용기 공동개발 계약

명품 브랜드 디올(Dior) 화장품이 국내 스타트업이 개발한 친환경 용기를 사용하게 됐다.그린패키지솔루션은 세계적인 럭셔리그룹 LVMH의 기술혁신 지주

[ESG;스코어]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한 시도교육청은 달랑 '1곳'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정부가 제시한 공공부문 온실가스 감축 권장목표를 달성한 곳은 '대전광역시교육청'이 유일했다.24일 뉴스트리는

신한카드, 개인정보 19만건 '술술'…유출사실 3년간 몰랐다

신한카드에서 가맹점 대표자의 휴대폰번호 등 19만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외부 해킹이 아닌 내부 직원에 의한 유출인

삼성重 사망사고에 사과…반복된 인명사고에 비판 잇따라

삼성중공업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삼성중공업은 공식 사과와 함께 사고 선박에 대한 전면 작업중

류재철 LG전자 신임 CEO "속도감 있는 실행으로 판을 바꾸자"

류재철 LG전자 신임 CEO가 "위기 속에 더 큰 기회가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도약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강조하면서 신년 아젠다로 5대

기후/환경

+

EU, 기업 해외이전 우려에 "철강·화학업종에 보조금 확대"

유럽연합(EU)이 철강, 화학 등 에너지 집약산업에 국가보조금을 확대한다.EU 집행위원회는 철강, 화학 등 이미 지원을 받고 있는 기업들에 국가보조금을

올해 수소 소비량 65% '껑충'...내년에도 2배 늘어날 전망

올해 수소 소비량이 지난해보다 65% 증가할 전망이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24일 '제4차 모빌리티용 수소 수급 협의체'에서 올해 11월까지 수송용 수소 소

기후변화 크리스마스 풍경도 바꾼다...눈도 트리도 순록도 감소

기후변화로 갈수록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이 어려워질 전망이다.23일(현지시간) 미국 시사매체 더위크에 따르면, 겨울철 평균기온 상승으로

크리스마스에 눈 대신 '폭우'...美 캘리포니아주 '물난리'

크리스마스 시즌에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물폭탄을 맞았다. 20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24일 정점을 찍고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까지 이어질 것이라

말라가는 美 콜로라도강…식수와 전력 공급까지 '위기'

미국 서부의 핵심 수자원인 콜로라도 강의 수위가 심각하네 낮아지면서 식수공급은 물론 수력발전까지 위협받고 있다.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

[날씨] 흐리고 추운 크리스마스...눈 내리는 지역은 어디?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겠지만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은 기온이 내려가면서 일부 지역에 눈이 내리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